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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이웃공개

Daydream..

 

 

항상 그랬듯이 우리는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는 카페 구석에 있는 창문 옆자리를 좋아했다. 늘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나였지만 그녀를 만나는 날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기 위해 항상 일찍 나갔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창밖을 바라보며 그녀의 옷차림이나 머리모양등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 또한 나의 즐거움중 하나였다.

창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가는 사람, 아기를 데리고 가는 젊은 부부, 누군가를 찾는 듯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살피는 사람.. 바깥 풍경에 푹 빠져 있을때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가 내 앞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은 기다렸다는듯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뭘 드시겠어요?'

'커피, 아이스티 주세요.'

 

종업원은 그녀에게 묻지도 않고 내 멋대로 주문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에게 항상 묻곤 하였다. 그러나 몇번 반복하면서 우리는 늘 같은 음료를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로에게 묻지 않은채 늘 마시던 걸로 마시게 되었다.

그녀가 먼저 내게 말을 건냈다.

 

'잘 지냈어?'

'똑같지 뭐..'

 

그녀는 그 또래 다른 여자아이와는 사뭇 달랐다. 그 동안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며 '몇일전에..''내 친구가..'로 시작되는 일상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나열하지 않았다. 잠시 후 주문한 차가 나왔고 차를 마시는 내내 우리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공통된 대화 주제가 없었다. 집이 너무 멀어서 자주 만날 수 없다는게 이유였지만 '369'일이나 애인으로 지내면서 공통된 주제가 없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차를 다 마신 후에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따뜻한 봄이었지만 전 날 비가 왔기때문인지 바깥 바람은 조금 쌀쌀했다. 항상 그랬듯이 우린 무작정 걸었고 항상 그랬듯이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가며 걸었다. 그녀의 오른쪽에는 동그란 링이 걸려 있었고 왼쪽에는 귀에 달라 붙는 귀걸이가 꽂혀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노란 빛깔의 머리삔이었다. 그러고보니 난 그녀의 뒤에서 걷기도 하였다.
길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비 때문에 길위에 지렁이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난 지렁이를 그리 싫어하진 않지만 그 날은 지렁이가 그녀의 걸음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신경쓰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컴퓨터과에 다니고 있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때 그녀가 컴퓨터과에 다닐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약간의 곱슬기가 있는 머리, 엷은 화장, 가방속의 소설책.. 어디를 봐도 컴퓨터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봄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때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졸업하면 뭐할꺼야?'
'글쎄.. 잘 모르겠어.'

 

우린 걸으면서 단 한마디씩 한채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그녀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고 버스에 승차하는 것을 본 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천구백구십구년 - 사실과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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